19세기와 1차 대전 직후를 거치며, 현지 아르메니아 공동체는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3대 기독교 종파가 되기 전에 예루살렘 아르메니아 지역에 거주한 신도는 2,500-3,000명 미만이었으며, 다른 이들은 하이파와 야포, 라말라, 베들레헴(및 요르단의 암만)에 거주했고 1939년 신도가 15,000명을 넘어섰습니다.
콥트 정교회는 국민이 1세기에 기독교인이 된 이집트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콥트교회는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 성 헬레나와 함께 예루살렘에 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유대광야의 사막 수도원이 발달하는데 일찍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공동체는 마믈룩 시대(1250-1517)에 번성하였으며, 1830년 무함마드 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번영을 누렸습니다. 13세기 후, (콥트) 알렉산드리아 대주교는 예루살렘에 상주하는 대주교의 치리를 받았습니다. 공동체 수는 주로 예루살렘과 라말라에 거주하는 1,500여 명입니다.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중세 이후 예루살렘에 공동체를 유지해 왔습니다. 초기 교회 역사가들은 4세기부터 에티오피아가 성지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에티오피아 교회는 성지에 대해 중요한 권리를 구가했지만, 대부분 터기 시절에 현상유지 선언이 있기 전에 권리를 상실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내 에티오피아 교회는 대주교가 이끌고 올드시티와 예루살렘 서부 에티오피아 교회 주변에 생활하는 수도사와 수녀 수십 명으로 구성됩니다. 이스라엘에 이주하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늘면서, 세속 공동체도 지난 20여 년 동안 어느 정도 성장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에티오피아의 외교 관계를 재수립한 후 성지 순례도 늘어났습니다.
시리아 정교회는 고대 안디옥 교회를 잇는 후임자이자 중동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 공동체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예배식과 기도문에는 시리아 언어(아람 서부)를 사용하는 것이 전통입니다. 또한 이들은 또 6세기 교회를 조직한 제이콥 바라데우스를 따라 재코바이트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총대주교는 다마스커스에 기거합니다.
예루살렘에는 793년부터 시리아 정교회 대주교가 있었으며, 1471년부터 상주하고 있습니다. 현재 예루살렘 교회는 7세기 성 마가 수도원에 기거하는 대주교가 이끌고 있습니다. 공동체는 가족들로만 구성되며, 대부분 나사렛과 하이파, 여리고, 라말라, 베이트 사훌, 베이트 잘라 등에 거주합니다.
터키와 이란, 이라크 국경지역에서 기원하는 동방사도교회(네스토리우스교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음)는 시리아 언어(동아람어)로 된 예배식과 기도문을 따릅니다. 1917년 이후 총대주교는 시카고와 케랄라(인도)에 거주해 왔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5세기에 설립되었습니다. 현재 대주교가 대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