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구도시를 방문하기 위해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성문이자 상징적 의미를 지닌 욥바 문이 이스라엘 수상청이 제공한 자금, 예루살렘 개발국과 예루살렘 시청의 관리, 이스라엘 문화재청의 기획으로 보수 공사를 완성함에 따라 이전의 영광을 꽤 많이 회복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구도시 성벽은 16세기 오스만 제국을 통치한 술탄 술레이만(1520-1566 CE)이 건축했습니다. 욥바 문 보수 공사는 수년의 방치에 따른 파괴와 부식 현상에 대처하기 위해 3년 전부터 구도시 성벽의 재건과 광범위한 보수 프로젝트에 따른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이라는 계획 속에 수행되었습니다. 공사에 앞서 성벽의 재건과 보수를 계획하고 수행할 장기적 프로그램을 위한 자료 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성벽의 석재 보강, 방문객들의 안전에 해가 될 위험요소 제거, 입구의 탄흔 보존, 변색된 돌과 장식의 개조, 그리고 문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등 욥파 문의 정면과 내부에 대규모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매우 악화된 상태로 빠르게 마모된 입구의 헌정 비문도 완벽하게 분리되어 보존되었습니다.
성벽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욥바 문은 1538년에 처음 세워졌고, 19세기 말 무렵에는 활발한 생활 중심지였습니다. 이후 1898년에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예루살렘 성벽의 넓은 입구를 트고(욥바 문 옆의 성 안으로 통하는 길)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와 아내 빅토리아가 마차를 타고 성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결정함으로써 이 문의 전성기는 막을 내립니다. 그것은 현대 예루살렘 역사에서 최초로 우마차를 타고 성 안에 들어온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독립 전쟁 당시(1948년)에 격전지였던 욥바 문의 입구는 전쟁에서 파손된 장갑차로 막혀서 완전히 봉쇄하였습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휴전 협정 후, 욥바 문은 짜할(Zahal) 광장까지 이어진 무인지대의 시작 지점이 되었고, 마밀라(Mamilla) 마을이 그곳을 요르단이 통치하던 동 예루살렘과 분리하였습니다. 그 후 입구를 막고 있던 장갑차는 도시가 분리된 기간 동안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전쟁 중 돌에 박힌 총알의 흔적을 지금도 문의 상층부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습니다.
(사진 : 보수 공사 기간 중의 욥바 문과 완공 후 모습. 이스라엘 문화재청 제공 )